전주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입니다. 특히 여름의 전주는 더욱 특별합니다. 햇살에 반짝이는 한옥지붕, 골목 사이를 타고 흐르는 바람, 시원한 콩국수와 고소한 전주비빔밥 한 그릇까지. 이번 2박 3일 전주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머무는 여행’이었습니다. 걸으며 느끼고, 맛보며 생각하고, 풍경에 마음을 내려놓았던 그 시간들을 진솔하게 담아보겠습니다.
한옥마을에서 시작한 전주의 아침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약 2시간 반. 전주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뜨거운 햇살과 함께 서서히 전주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역시 전주한옥마을. 여름에도 관광객들로 붐볐지만, 그 안에는 분명 전주만의 고요한 호흡이 있었습니다.
숙소는 한옥스테이였습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루 끝으로 햇빛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고, 고요한 안채에 걸터앉아 시원한 오미자차를 마시니, 여행을 시작하는 마음이 조금씩 풀렸습니다.
오전엔 경기전을 찾았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곳으로, 붉은 단청과 푸른 잔디가 여름 햇살에 더욱 또렷해 보였습니다. 숲 사이로 걸으며 들리는 나뭇잎 스치는 소리와 새소리는, 시간의 속도를 천천히 늦춰주었습니다.
점심은 경기전 근처의 전주비빔밥 전문점에서. 대추고명을 얹은 고슬고슬한 밥 위에 나물, 육회, 계란, 고추장이 정갈하게 담겼고, 비비는 순간부터 향이 달랐습니다. 밥 한 숟갈에 전주 전통의 자부심이 느껴질 만큼 깊고 조화로운 맛이었죠.
오후엔 전동성당과 풍남문을 천천히 돌며 사진도 찍고, 시원한 수제 팥빙수를 먹으며 더위를 식혔습니다. 밤에는 한옥마을의 야경 투어. 조명 아래서 은은히 빛나는 기와지붕, 골목길을 거니는 사람들의 낮은 목소리, 풍경에 녹아드는 음악 소리까지—전주는 밤이 되니 더욱 매력적이었습니다.
전동 골목길과 서학동, 예술로 걷다
둘째 날은 서학동 예술마을로 향했습니다. 전주 한옥마을 남쪽, 도보로 10분 거리지만 분위기는 전혀 달랐습니다. 아기자기한 벽화와 골목길, 작가들의 공방, 감성 카페들이 조용한 골목 속에 숨어 있었고, 오르막길 너머의 풍경도 인상 깊었습니다.
소품샵에서 수공예 엽서를 사고, 북카페에 들러 시원한 아이스티 한 잔과 함께 책장을 넘기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작은 갤러리에서 전주 출신 작가의 민화 전시가 열리고 있었고, 그 섬세한 붓질 하나하나가 도시의 깊이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점심은 남부시장 청년몰에서. 다양한 먹거리 중 저는 육회비빔밥을 선택했습니다. 노른자가 터지는 순간, 젓가락을 멈추고 사진을 남기게 되더군요. 청년몰에는 중고서점, 수제 맥주 펍, 감성 소품샵까지 있어 먹고 보고 즐기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오후엔 덕진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연꽃이 활짝 핀 연못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 그리고 분수대의 시원한 물줄기 덕에 무더운 날씨도 잠시 잊혔습니다. 나무그늘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고, 아이스크림을 천천히 먹으며 한 시간 넘게 머물렀습니다.
저녁엔 전주의 명물 막걸리 골목. 1인 1상 가득 차려지는 반찬과 함께 막걸리 한 사발. 말 그대로 ‘전주의 밤’이었습니다. 조용히 혼술을 즐기는 사람, 가족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 모두 이 공간에 편하게 녹아 있었죠.
마지막 날, 시장과 길 위의 정
여행 마지막 날 아침은 전주남부시장 아침시장으로 시작했습니다. 새벽 6시부터 시작되는 이 시장은 지역 주민들의 진짜 삶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신선한 채소, 국수, 생선들이 즐비했고, 어르신들의 진한 전라도 사투리가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간단하게 시장 안 국밥집에서 따끈한 선지국으로 속을 달랜 후, 골목길을 따라 한옥마을로 다시 이동했습니다. 이른 아침의 한옥마을은 전날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조용했고, 햇살은 부드러웠으며, 전날의 소란은 모두 사라져 고요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한옥마을 근처 전통 공예 체험장에 들러 나만의 부채를 만들었습니다. 직접 고른 문양, 붓으로 찍은 이름 하나하나가 짧은 여행의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하게 해주었습니다.
전주 한옥마을 여행 한눈에 보기
전주는 단순한 볼거리의 도시가 아닙니다. 이곳은 속도를 낮춰야 비로소 보이는 도시입니다. 기와지붕 아래 흐르는 바람, 골목 끝의 노란 조명, 오랜 시간 한자리에 있는 국밥집 사장님의 인사까지—모든 것이 ‘잠시 멈춰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이번 여름, 바다보다 골목이, 파도 소리보다 사람의 말소리가 듣고 싶다면, 전주를 추천합니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사이에서, 분명 당신만의 전주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